2015년 2월 21일 토요일

마가복음 14:43~15:15

성경모임 추구자료 (6)
2011. 10. 21(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43~15:15
[개요]

   IV.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노예-구주의 죽음과 부활(14:43-16:18)
    A. 그분의 죽음(14:43-15:47)
      1. 붙잡히심(14:43-52)
      2. 재판받으심(14:53-15:15)
        a.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14:53-72)
        b. 이방인을 대표하는 로마 총독에게 (15:1-15)


인자  

우리는 주 예수께서 거짓 고소를 받고 있는 동안에 잠잠하셨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분의 인격에 관해 그리스도 곧 찬송받을 자의 아들이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 주님은 찬송을 받을 자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자신을 인자로 언급하셨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이 땅에서 뿐 아니라 부활하신 후 하늘에서 하나님 오른편에서도(행7:56), 심지어 구름을 타고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때에도 인자이시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주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다. 사람이 없이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 땅에서 수행될 수 없다.

죽음의 과정을 통과함  

14장에서 주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서 심판을 통과하고 계시는 동안 베드로는 실패했다. 그의 실패에서 그는 주님의 죽음에 대한 체험을 통과했다. 주님을 친밀하게 따르는 모든 자들도 역시 그분의 죽음 안으로 이끌려졌다.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로 인해 주 예수님이 그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힘이었으며, 이러한 십자가에 못 박힘은 주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의 죽음안으로 이끌려질 필요가 있었다. 이는 그가 너무도 천연적이기 때문이었다. 담대한 그는 항상 앞장을 섰다. 분명히 이런 사람은 못 박힐 필요가 있었으며 사실 베드로는 못 박힌 것이었다. 비록 그가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주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의심할 바 없이 나중에 베드로는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한 후 자신이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 예수님은 승리에 찬 방식으로 죽음에 들어가셨으나 베드로는 실패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들어갔다. 이 실패는 베드로의 천연적인 존재를 드러냈으며 그것을 처리받을 수 있게했다.



주 예수님만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신 유일한 분이 아니다. 베드로로 대표된 우리 모두가 주 예수님과 함께 이 과정을 통과했다. 당신은 자신을 베드로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드러나 심판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있는 베드로들이다.

마가복음 14:27~14:42

성경모임 추구자료 (5)
2011. 10. 07(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27~14:42
[개요]

   4. 제자들에게 경고하심 (14:27-31)
   5. 겟세마네를 체험하심 -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분부하심 (14:32-42)


주님의 죽음과 부활 안으로 이끌려짐 

마가복음 14장과 15장을 읽을 때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안으로 이끌려졌다는 것을 본다. 결코 주 예수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베드로가 장담했을 때 그는 아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실족할지라도 자기는 실족하지 않으리라고 선언했다. 그는 계속하여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14:31)라고 했다. 그러나 장담한지 얼마 안되어 그는 완전히 주 예수를 부인했다. 주님을 부인한 후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14:72). 매우 참된 의미에서 이것은 베드로의 십자가에 못 박힘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그는 울었다.

그리스도의 재산출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의하면, 베드로는 죽음의 과정을 통과했을 뿐 아니라 또한 주님의 부활과 승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가 오순절 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고 승천한 사람이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재산출이었다. 베드로는 이 그리스도의 복사판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안으로 이끌려진 베드로는 또한 그리스도로 적셔져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였으며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그가 되셨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오순절 날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복사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복음의 기록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재산출이 되기 위해 긴 과정을 통과했음을 가리킨다. 이 과정은 1장에서 어부인 베드로를 주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시작되었다. 그를 부르신 후 주님은 베드로를, 완성되는 데 삼년 이상이 걸린 과정 안으로 이끄셨다. 결국 오순절 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안으로 이끌려진 사람이 되었다.

새 사람을 산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이 새 사람을 산출하는 것임을 보았다. 새 사람을 산출하는 방법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대치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할 때 우주적인 대치이신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만유를 포함한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항상 충돌과 핍박이 있을 것이다. 사탄이 옛 창조를 점령하고 있으며, 주님의 일을 반대하기 위해 옛 창조에 속한 자들을 부추기기 때문에 옛 창조에 속한 것들은 우리를 방해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치가 되지 못하게 한다.
먼저 그리스도는 유댜교에 속한 모든 옛 것들을 대치하신다. 우리는 9장과 13장에서 그리스도가 모세와 엘리야, 심지어 성전까지 대치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이방 세계에 있는 것들을 대치하신다. 그분은 문화와 관습과 습관들과 옛 생활 방식을 대치하신다.



그리스도가 이러한 대치이시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은 적극적인 목적에 이바지한다. 충돌을 통해 우리는 죽음에 넘겨지며 부활 안으로 인도된다. 이것은 핍밥과 충돌을 통해 대적이 할 수 있는 전부는 결국 부활 생명의 흐름이 해방되도록 도울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할렐루야, 새 사람을 산출하는 흐름은 하나님의 왕국이 될 것이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산출된다. 주님의 죽음과 부화을 통해 우리는 새 사람의 산출을 위한 만유를 포함한 우주적인 대치이신 그분을 누린다.

마가복음 14:12~14:26

성경모임 추구자료 (4)
2011. 09. 29(목)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12~14:26
[개요]
   3. 만찬을 제정하심 (14:12-26)


유월절의 대치

베다니에서 잔치를 누리신 후에 주 예수님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고 유월절의 대치로서 그분의 만찬을 설립하셨다(14:12-26). 주님은 그의 두 제자에게 유월절 잔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도록 권하셨다(12-16절).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에서 그것은 유월절의 마지막 잔치였다. 왜냐하면 그때로부터 유월절은 주님의 상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옛 경륜이 새 경륜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대신에 주님의 상, 즉 주님의 만찬을 지킨다.

노예-구주를 기념함 

신약의 새로운 이 실행은 믿는이들을 위해 주신 그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고전 11:24) 그들의 죄들을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심으로(마 26:28) 노예-구주를 기념하는 것이다. 떡은 생명(요 6:35), 즉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며, 잔은 축복(고전 10:16), 즉 그들의 분깃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시 16:5). 죄인들인 그들의 분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다.(계 14:10). 그러나 노예-구주께서 그들을 위해 잔을 마시셨고(요 18:11), 그분의 구원은 그들의 분깃, 즉 넘치는(시 23:5) 구원의 잔이 되었으며(시 116:13), 이 잔의 내용은 그들의 만유를 포함한 축복이신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잔은 이러한 떡과, 그분의 믿는이들이 이 같은 잔치이신 그분을 누림으로 그분을 기념할 수 있도록 그분이 세운 상과(고전 10:21) 잔치인 노예-구주의 만찬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의 풍성과 기묘한 구원을 온 우주에 간증하며, 구속하여 생명을 분배하는 그분의 죽음을 전시한다(고전 11:26). 그분의 몸에서 분리된 그분의 피는 그분의 죽음을 표명한다.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됨  

주님의 상에 있는 떡은 우리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려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찢기우신 그분의 몸을 상징한다. 이 생명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전 12:27). 이 또한 상에 있는 떡으로 상징된다(고전 10:17). 그러므로 이 떡을 취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갖는다.(고전 10:16).
주님은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우셨다. 주님의 생명의 해방은 부활 안에 있다. 그러므로 떼어지는 것은 죽음의 문제이며 해방은 부활의 문제이다. 십자가 위에서 깨어짐을 통해 주님은 우리가 이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 안으로 부터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실 수 있었다. 주님의 신성한 생명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 즉 그분의 확장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떡을 누림으로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됨을 가리킨다.
그분의 확장인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은 또한 고린도전서 10장 17절에서 가리키는 것처럼 상 위에 있는 떡으로 상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떡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갖는다.

피와 언약과 잔
주님의 피는 우리를 타락한 상태로부터 하나님께로, 즉 아담의 타락을 통해 우리가 잃었던 기업에로,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에로 구속했다. 주님의 상에 관하여(고전 10:21) 떡은 우리가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잔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우리의 누림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잔은 축복의 잔이라 불리운다(고전 10:16). 이 잔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분깃인 하나님 자신이 있다.(시 16:5). 아담 안에서 우리의 분깃은 하나님의 진노늬 잔이었다(계 14:10).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그 잔을 마시셨으며(요 18:11) 그분의 피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잔이 되었으며(시116:13) 넘치는 전이 되었다(시23:5). 이 잔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을 갖는다(고전 10:16).

떡과 잔
주 예수께서 그분의 만찬을 설립하셨을 때 그분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14:22)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잔을 가지사 그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4절)"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은 한 덩어리의 떡과 잔을 포함한다.
성경적인 용법에 의하면 떡은 생명을 상징한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요 6:35). 이것은 성경에서 떡이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가리킨다. 더욱이 성경적인 용법에 의하면 잔은 축복의 분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잔은 축복의 잔이라 불리운다. 떡은 생명에 속한 것이며 잔은 축복에 속한 것이다. 확실히 이 생명은 신성한 생명이며 이 축복은 신성한 축복이다. 사실 생명과 축복은 삼일 하나님, 즉 영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원한 생명은 삼일 하나님이다. 당신은 신성한 축복이 무엇인지 아는가? 신성한 축복 역시 삼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축복은 사실상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축복이 됨
삼일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축복이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것이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은 음식은 소화되어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된다. 어떤 것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려면 그것은 유기적이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돌멩이를 삼킨다면 그 돌은 당신의 생명 공급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돌이 살아 있거나 유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유기적인 것만을 소화할 수 있으며 우리 안으로 흡수하여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되게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 공급과 심지어는 우리의 생명이 되려면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소화 흡수 되어야 한다. 확실히 삼일 하나님은 살아있으며 유기적이다.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하나의 떡 덩어리, 즉 생명의 떡이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떡 덩어리, 즉 생명의 떡이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51절), 그리고 그분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57절). 생명의 떡이신 주 예수를 먹는 믿는 자마다 그분으로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생명의 떡을 먹을 때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소화되어 유기적으로 우리 안으로 흡수 된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삼일 하나님은 유기적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와 바로 우리 영적 존재의 섬유질 안으로 흡수되어 우리의 생명 공급과 생명이 되신다.

주님의 상에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에 관한 깊은 의미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단지 그분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분이 겪으신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러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합당하게 기념하는 것이 그분을 먹어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그분을 취하는 것임을 본다. 상위에 있는 떡은 우리가 분석하거나 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떡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취하여 먹기위한 것이다. 이 떡은 소화 흡수되어 바로 우리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는 심오하다.
주님의 상의 떡을 먹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들어오며 사실상 그분이 우리가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먹는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먹은 음식이 결국 우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음식이 우리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음식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와 우리가 먹어 소화 흡수한 음식사이에 유기적인 결합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안으로 흡수된 음식과 연합된다.

내적인 부활을 체험함



우리는 주님의 상이 주님 자신과 그분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증가인 그분의 비밀한 몸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주님의 상이 그분의 부활과 관련이 있는가? 언제든지 우리가 주님을 먹어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분을 소화 흡수 할 때마다 우리는 내적인 부활을 체험한다. 우리는 물질적인 음식 먹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때때로 나는 저녁이 되기 전에 피로하고 약해진다. 그러나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은 후에 나는 다시 살아난다. 나는"부활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먹은 음식은 나를 소생시키는 생명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우리가 주 예수를 먹을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부활 생명이 되신다.

마가복음 14:01~14:11

성경모임 추구자료 (3)
2011. 06. 10(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01~14:11
[개요]
   2. 음모가 꾸며짐, 배반당하심, 사랑받으심 (14:1-11)


주님을 사랑할 기회를 붙잡음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은 교회 생활의 축소판이다. 이 축소판에 의하면 교회 생활은 주 예수를 사랑하는 깨끗케 된 문둥이들로 구성된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시몬과 그분께 기름을 부었던 여인이 했던 것처럼 그분을 그들의 완전한 대치로 취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성전을 위한 여지가 없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에 의해서도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5절).
거기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4-5절) 분낸 자들은 주님께 드리는 여인의 사랑을 허비라고 생각했다. 지난 십 구세기를 통해 수천의 귀한 생명들과 마음의 귀한 보물들과 높은 지위와 황금같은 장래들이 주 예수 위에 "허비" 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그분만이 사랑스럽고 그들의 예물을 드리기에 가치가 있다. 그들이 그분께 부어드린 것은 허비가 아니라 그분의 달콤함을 간증하는 향기였다.

교회생활에서 우리의 대치이신 그리스도

 
우리는 13장에서 주님이 그분의 죽음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14장에서도 이 준비를 계속했다. 주님의 준비는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새 사람을 산출할 것인가를 계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새 사람의 출생은 산고의 고난을 요구한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주님은 그들의 사랑을 누리심으로 계속하여 제자들을 준비하셨다. 깨끗케 된 문두잉들로 이루어진 집에 들어가면서 그분은 잔치와 아울러 기름 부음을 누리셨다. 잔치는 내적인 만족의 문제이며 기름 부음은 달콤한 향기로 주님께 문언가를 부어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주님은 만족하셨으며 기름 부음 받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닌 그분을 사랑하는 자 중의 하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주님은 모든 것을 대치하셨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 안에, 그들 주변에 그분 외에 아무것도 어떤 사람도 갖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 놀라운 인격, 그들에게 모든것 되신 분만 있었다.

우리는 14장 1절부터 11절에서 교회 생활의 축소판을 갖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별히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취하는 체험의 축소판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 축소판으로 묘사된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갖는다. 교회 생활 안에 있는 우리는 그분에 의해 께끗케 된 문둥이들이며 우리 마음 안에는 그분만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안에 , 우리 주위에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을 모든 것으로 취한다.




노예구주를 따르는 자들 중 하나가 그분께 그녀의 사랑을 최고로 표현하는 동안 다른 자는 그분을 배신하려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그분을 귀히 여겼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은 그분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가복음 13:01~37

성경모임 추구자료 (2)
2011. 06. 02()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3:01~13:37
[개요]
D.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제자들을 예비시키심
   1. 다가올 일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주심 (13:01-37)


장차 될일 

그분의 죽음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시면서 노예-구주는 13장에서 그들에게 장차 될 일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후로부터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 시대 동안에 세상에서 발생할 일들이다. 이는 주후 70년에 발생할 성전의 멸망과(1-2절) 그분의 부활 후에 시작하여 대환난 때까지 계속될 산고의 시초에 있는 재난과(3-8절) 교회 시대에서의 복음 전파와 핍박(9-13절), 이 시대의 마지막 삼 년 반에 있을 대환난과 그분의 다시 오심(14-27절), 교회 시대 전반에 걸쳐서 깨어 기도하며 노예-구주를 기다리는 것이다(28-37절). 빛 비추는 이같은 말씀은 고통 당하며 노예-구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날이 샐 떄까지 어두운 데서 빛나는 등불과" 같다(벧후1:19).
 복음전파와 핍박의 고난
당신은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각 세기는 복음 전파와 고난을 통한 새 사람의 분만을 증거한다. 우리는 왜 새 사람이, 핍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복음 전파에 의해 출생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타락한 때로부터 옛 창조는 하나님의 대적 사탄의 강탈하는 손 아래 있어 왔다. 하나님은 이제 그분의 옛 창조로부터 새 사람을 산출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대적은 이같은 일들을 허락하길 원치 않으므로 모든 것들과 모든 문제들을 동원하여 새 사람의 산출을 방해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륜을 거스른다. 이러한 이유로 핍박이 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어선 때로부터 이러한 핍박은 계속 일어났다. 핍박은 먼저 그들의 종교를 갖고있는 유대인들로부터 왔으며 정치 안에있는 로마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자들에 대한 핍박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두 가지 일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는 복음전파와 핍박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끝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주권이다. 역대로 주님의 신실한 자들은 어떤 대가,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한편 옛 사람과 그 사회와 문화로 된 옛 창조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은 대대적인 핍박을 감행했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사탄의 반대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그 결과는 사탄이나 세상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궁극적인 결과는 새사람의 완전한 분만이다.




새 사람의 출생을 위한 긴 과정 후에 주 예수는 성도들이 휴거될 때에 새 사람을 영접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휴거가 있을 것이며 이 휴거가 새 사람의 분만을 마무리할 것임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보고 마가복음 13장을 다시 읽는다면 우리는 말씀으로부터 신선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주님은 그분을 친밀하게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러한 이해 안으로 이끌고 계셨다.

그 영

그 영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온 존재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온 존재와, 그분께서 성취하시고 획득하시고 달성하신
모든 것을 적용하신다. 이처럼 그분은 한 신성한 적용이 되셨다. 아버지는 경륜을 세우셨고,
아들은 그것을 성취하셨으며, 그 영은 아들께서 성취하신 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러므로 그 영은 적용이시다.

마가복음 11:27~12:44

성경모임 추구자료 (1)
2011. 05. 25()
진도: 마가복음 11:27~12:44
[개요]
C. 시험 받으시고 검사받으심 (11:27-12:44)
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에게 (11:27-12:12)
2.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에게 (12:13-17)
3. 사두개인들에게 (12:18-27)
4. 한 율법학자에게 (12:28-34)
5. 모든 사람의 말문을 막으심 (12:35-37)
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심 (12:38-40).
7.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심 (12:41-44)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의 이 기간 동안에 노예-구주는, 복잡하고 간교한 질문을 함으로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력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첫 번째로 유대 종교의 권위를 대표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그분의 권위에 관해 주님께 질문을 했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관념에 따른 질문이었다. 두 번째로 근본주의적인 바리새인들과 정치적인 헤롯 당원들은 그분께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 세 번째로 현대주의적인 사두개인들은 그분께 근본적인 신앙, 특별히 부활에 관계된 신앙에 관해 질문을 했다. 네 번째로 서기관, 즉 율법사는 그분께 성경해석과 관련 있는 질문을 했다. 그들의 모든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신 후에 주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질문하셨다. 그들의 질문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성경해석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분의 질문은 그리스도, 즉 모든 영적이고 신성한 것들의 중심이신 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문자로 된 성경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관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12 35절부터 37절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질문을 하셨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물으신 후 주 예수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윗의 성령 안에서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바 아래 둘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것이니, 그분의 신성 안에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이시며,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부분적인 성경 지식밖에 없었다. 즉 그분이 그분의 인성을 따라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나머지 부분을 알지를 못했다.
헛된것과 실제의 대비
그분은 제자들에게 공허하고 헛된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과부의 내적 실제를 높이심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서기관은 공허하게 말하는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어떤자이며, 이 과부는 내적 실제를 갖고 있는 믿는이를 상징한다. 이 사건들을 상고할 때 우리는 서기관이 되는 대신에 가난한 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다. 서기관들에게는 공허함과 헛됨이 있으며 과부에게는 내적 실제가 있다. 우리는 실제를 귀히 여기고 공허함을 주의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뛰어나게 말을 잘하며 웅변적이고 지식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가난하나 실제로 충만할 수가 있다. 돈의 문제보다 더 믿는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것은 없다. 돈이 믿는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이유는 인간 생활에서 돈이나 물질적인 소유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돈과 물질은 당신에게 하나님께 대한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다

하나님게 있어서의 의(義)란?

그영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고 일하시는 것을 체험한 결과로 우리는 의롭게 된다.
자연히 우리의 속 존재는 투명해지고 맑아지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다.
즉시 우리는 노력 없이도 주님의 생각을 알게되며 그분의 뜻과 일에 관하여 분명한 이해를 갖게된다.
그럴때 우리가 행하는 것이 주님의 생각과 뜻을 따르게 된다. 이것이 의이다.

십자가를전하는길

우리는 그분의말씀을 부주의하게 또는 어리섞게 전하지말아야한다 오히려우리는 우리가 부득불 말해야만 할정도로 그분의말씀이 먼저 우리 영안에서불타게 해야한다

안식일을 지키는것과 금식의 내재적 의미

-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행함을 멈추면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치물로 취하고, 그리스도 외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입맛을 갖지 않는 이 한가지 공과를 배우기를 원하신다.

이사야 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들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혼이 살리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영원토록 그분 안에서 안식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해고되고 대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일을 멈추고, 우리의 의도를 그치며, 우리가 해고되고 대치됨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결과 우리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사시는 것이다.(갈 2:20)

성경에 따른 금식의 참된 의미는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입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금식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식욕만을 가지며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도 먹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일하고 먹는 일에 바쁘기 때문에, 마음안에 그리스도를 위한 어떤 여지나 존재 안에
그리스도를 위한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쉬어야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금식해야 한다.
안식하고 금식함으로써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참여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그분의 존재와 그분께서 성취하신 것은 다만 신성한 물이며, 이 신성한 물은 바로 우리가 마시고 누리기 위한 완결되신 영이다.

안식일을 지키는것 (이사야 58장)

하나님은 하나의 경륜을 가지고 계시는데,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과 전부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행함을 멈추고 그리스도외의 그 어떤것에 대해서도 입맛을 갖지 않는 이 한가지 공과를 배우기 원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대치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누려야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목적이다.

안식일을 지키는것은 우리자신을 멈추는 것이다. 안식일에 금식하는것은 기존에 자신이 먹던 많은 음식들(텔레비전, 스포츠, 음악, 잡지, 세상적 오락들)
을 멈추고, 그리스도 즉 하나님자신만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사는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그리스도 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일의 의미이다..

철근배근예시(D22보강근 최대한 촘촘하게 넣을 경우)

철근배근예시

철근배근예시(D22보강근 2대를 최대한 촘촘하게 넣을 경우)

골재가 들어가는 최소 너비: 25mm(20mm로 보는 현장도 있음)

(오프닝)|<--25mm(피복두깨)-->|<--22mm(철근)-->|<--25mm(골재채움)-->|<--22mm(철근)-->|<--25mm(피복두깨)-->|(오프닝)




총 길이: 25+22+25+22+25=119mm 소요

시공 부위별 방수공법 정리(내방수, 외방수)






건축설계시 적용 부위별 방수공법(water-proof) 정리.

1. 옥외구간(outdoor)
  - 지붕: 복합방수(노출,비노출)
  - 옥탑지붕: 복합방수or도막방수
  - 옥상조경: 방수,방근공법(연질형복합방수:방수범위선정시 Plant box에서 1,000mm offset)

2. 실내구간(indoor)
  - 화장실,주방: 무기질탄성도막,액체방수
  - 공조실: 무기질탄성도막
  - 정화조(바닥,벽,천장): 구체방수+탈에폭시코팅 3회​

3. 지하구간(underground)
  - 지하층 외벽, 바닥포함
     - 외방수: 아스팔트방수
                   폴리우레아도막방수 (빠른건조필요시)
     - 내방수: 침투성방수
  - 최하층 바닥
     - 침투성방수



노출콘크리트 계획시 줄눈 및 콘구멍 간격 / 노출콘크리트 패널 계획시 규격


[합정동 YG 사옥]



 
[화성폴라리온사옥]




 
[일반적인 노출콘크리트 벽면타입]

[노출콘크리트 줄눈계획]

​    노출콘크리트로 건축입면을 계획할 경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치수로 계획하면 된다.



          <면이 작을경우 6자尺(1,820) x 3자尺(910)>



<면이 클경우 8자尺(2,440) x 4자尺(1,220)>

[피복두깨]
     노출콘크리트의 부위별 피복두께는 다음표를 따르되 각종 줄눈의 마감처리에 따라 피복두께를 10~20mm 정도 더해야 한다.



​    
      흙에 접하지 않는 부분
         지중슬래브, 바닥슬래브, 비내력벽 : 옥내 (30mm) / 옥외 (40mm)
         기둥, 보, 내력벽                   : 옥내​ (40mm) / 옥외 (50mm)
         옹벽                                : ​(50mm)
 
     흙에 접하는 부분
         기둥, 보, 바닥슬래브, 내력벽        : (50mm)
         기초, 옹벽                             : (70mm)
 ​



[노출콘크리트 패널계획]
    노출콘크리트시공이 용이하지 않을경우, 일반적인 콘크리트 시공후, 패널형태로 붙일수도 있다.
    ​아래는 시중에 통용되고 있는 한 콘크리트 패널시공회사에서 제시하는 콘크리트 패널 사이즈이다.



노출콘크리트는 시공만 깔끔하게 잘 될 경우, 우수한 재질감과 높은수준의 디자인으로 귀결될수 있는
꾀나 각광받고 있는 재료임에 틀림없다.




계획시 한번 반영해 보시길..

지하층단열재설치시 주의사항(콘크리트방수한계)



에너지절약계획상 건축물의 단열재는 지상층기준아래로 2m아래로 단열재를 설치하게 되어있으나
그림과 같이 외단열로 처리할경우 다공질단열재를부착할경우 습기가스며들어 단열재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층외단열 처리시에는 반드시 단열재에 PE필름처리를 하던지 아니면, 무근처리를 하던지 해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일반적으로 콘크리트의 경우 70mm이상 물이 스며들지 못하므로 그 이상의 두깨로 처리하면 특별한 방수재처리를 하지 않아도 무관하다.

방사능치료시설설계시 차폐 콘크리트제염설계



방사능관련시설 설계시 주의사항.

중입자가속기나, 양성자치료센터, 등과 같이 특수방사능 치료센터가 속속들이 국내에서 오픈되고 있다.
특수방사능설비를 설계할 경우, 차폐가 매우 중요한데, 기본적으로 콘크리트 자체는 차폐성능이 있으므로, 덕트나 배관, 그리고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제외한 부분은 특별한 차폐재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혹여나 모를 방사능물질 누출의 경우 장기간의 사용시 콘크리트 표피에 방사능물질이 누적오염되게 되면, 반드시 제염작업을 하여야 한다. (2차오염방지를 위해)

문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콘크리트 내부에 들어있는 철근인데, 일반적으로 한국구조설계기준에 따른 콘크리트 피복두깨를 따라가게 되면, 제염의 어려움이 따르므로, 세밀한 검토를 통해 피복두깨를 더 두껍게 설계하도록 고려하여야 한다.

2015년 2월 17일 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classic travel]-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bach)와 헨델(handel)(하)


스무명의 자녀를 둔 바흐 / 평생 독신으로 지낸 헨델

 바흐는 두번결혼하여 총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번째 부인은 7명의 자녀를 낳고, 결혼 13년차에 세상을 떠났다. 두번째 아내는 전 부인의 자녀 7명에 추가로 13명의 자녀를 낳고 그들 모두를 훌륭하게 돌보면서도 남편의 악보정리까지 해 냈다. 스무명의 자녀가있는 왁자지껄한 집안분위기속에서도 바흐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쳐 대부분이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 그중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런던의 바흐'라고 불릴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헨델은 한군데 정착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생의마감

두사람은 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눈 치료를 받고 실명하게 되었다. 헨델은 평생 왕의 총애를 받다가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영예를 받았지만, 바흐는 죽어서도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가난한 탓에 자녀들은 바흐의 악보를 헐값에 팔았고, 그의 악보들은 여러군데로 흩어지게 되었다. 후에 맨델스존이 바흐를 재평가 하여 널리 알리면서, 완전히 재평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바로크음악

바흐와 헨델은 고전파 음악의 창시자라고 할수 있다. 당대 사회문화는 바로크양식이 흥황할 때였는데,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루투갈 단어로, 르네상스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바로크양식이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바로크는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갖는데, 17세기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은 탐험과 항해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탐험과 항해술의 발달은 천문학과 과학의 발달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지구가 크고 세상은 넓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 큰 건물과 더 웅장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종교적으로는 기존 천주교의 부패에 대항하여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에 위협을 느낀 천주교는 기존보다 더 크고 웅장한 성당을 짓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바로크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은 프랑스, 영국, 독일등 유럽각국에 영향을 끼쳤고, 프랑스에서는 오페라와 발레가 전성기를 누렸으며, 독일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작곡가들의 종교음악 칸타타, 푸가등이 발전되었다.

바로크음악의 특징

바로크음악은 기존의 종교 및 성악중심의 음악이 기악중심으로 전환된 것이 특징이다.
소규모 연주회가 대규모 연주회로 변화됨에 따라 악기의 종류도 많아지게 되었다. 또한 다성음악(polyphony)의 시대가 도래되었는데, 이는 두개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노래하여 결합하는데 대위법(counter point)라고도 한다. 바흐의<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헨델의<메시아>같은 곡을 들어보면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과는 다르게 복잡함이 느껴진다.





추천음악

바흐-이탈리아 협주곡(Concerto Italian)


바하의 곡중 대위법의 강박을 벗어나 비교적 편하게 들을수 있는 곡이다. 여느 바하의 곡처럼 무겁거나 엄숙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다가갈수 있는 곡이다.

특히 글렌 골드(Glenn Gould)는 바흐전문가라고도 불리는데, 그는 바흐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린 연주가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괴짜스런면은 있지만 말이다..






헨델-오페라<세르세>중 '라르고'


주인공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가 뜰에 나와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부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리아곡이다.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classic travel]-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bach)와 헨델(handel)(상)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와 헨델

클래식을 논할때 항상 서두에 등장하는 바흐와 헨델...
그리고 그들에 대한 수식어 아버지와 어머니...
도대체 왜 그런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며, 왜 별다른 이견이 없는 걸까..

이 책에서의 설명은 크게 두가지 이다.
하나는 두사람다 서양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선구자였다는 점.
또다른 하나는 그들이 매우 대조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많이 다르긴 하다.

1685년 독일출생...
음악적 신동..
말년에 시력상실...
이것이 이들이 지닌 유일한 공통점이었다고 하는데..

바흐는 50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명문가 출생이라고 한다.
(유전학계의 연구대상이 될 만큼 유명한 음악명문가문이라니..)
그의 성향은 재능을 겸비한 노력파...따라갈수 없는 타입이다..

그에반해 헨델은 외과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고 음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헨델이 음악을 하는것을 반대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피해 밤에 다락방에 홀로 올라가 달빛을 벗삼아
독보법과 연주법을 익혔다고 하니, 헨델도 엄청난 노력파임에 틀림 없다.

중간결론: 훌륭한 음악가는 노력파다!!


교회 음악가 바흐

9살때 부모를 여의고 큰형집에서 힘겹게 삶을 연명하던 바흐는
14세때 뤼네부르크의 한 교회합창단원으로 들어간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는 오르간 연주자가 된다.
1723년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취임한다.
(칸토르: 지역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 쓰는 음악을 만들고 합주단과 합창단 지도하는 음악 감독)
그곳에서 27년간 모든 작곡활동을 묵묵히 해 나갔다고 한다.

그의 대부분의 곡들은 교회음악이었는데,
평생 약 200개의 칸타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직업적으로 교회음악을 작곡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의 모든곡들은 그의 신앙심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한곡한곡을 작곡할때 많은 기도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종교음악은 크리스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수 있겠다.




사업가 헨델

헨델은 타고난 사업가적 근성으로 음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헨델은 음악과 사업을 잘 결부시켜, 대규모 음악회나 공연을 통한 수익을 올렸다.
심지어 직접 오페라단까지 만들었으며, 대중적으로 성공하였다.
그는 음악으로 돈을번 첫번째 케이스라고 할수 있겠다.

바흐는 평생 독일에서만 활동한 반면,
헨델은 일찌기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가인 몬테베르디의 영향을 받았는데,
몬테베르디는 당대 종교음악에서 탈피하여 세속적인 음악
"오페라"를 탄생시킨 사람이다.
살롱에서 귀족들이 모여서 감상하던 클래식을 대단위 극장에서 연주하도록 발전시킨
장본인이라 할수 있다.

베네치아의 오페라 열풍은 전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습득한 오페라 음악을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영국의 자유로운 문화에 심취하여, 영국에 귀화하기까지 한다.
헨델은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각 나라의 음악의 장점만을 익혀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헨델이 영국에 귀화해 버림으로써
조국 독일 하나버 왕조의 선제후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짖굳은 운명의 장난인지, 그 선제후는 영국의 앤 여왕의 서거이후,
영국왕위에 올라 조지 1세가 되어 버린다.

이에 위협을 느낀 헨델은, 수상음악을 작곡하고,
국왕이 템즈강에서 물놀이를 할때 연주함으로써,
조지1세의 노여움을 풀었다고 한다.




진지한 바흐 / 대중적인 헨델

그들의 태생적 차이로 인해 둘의 음악적 성향은 상이했다.
둘다 바로크시대의 음악이라 할수 있지만,
바흐는 음악의 본질적 요소에 충실하고 단순한 진리와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면
헨델은 온갖 기교를 통해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헨델은 다카포(da capo) 형식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다카포 형식은 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연주하는 형태로,
작곡가는 조금만 작곡해도 되고, 듣는 청중은 좋은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들어서 좋은
한마디로 win-win 할수 있는 음악이라 할수 있겠다.



헨델이 쉽게 돈을 벌고 있을때, 바흐는 사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엄지손가락 활용연주법에 매달려, 푸가 형식을 완성하였다.




헨델은 비교적 쉬운방법으로 화려한 음악을 만들어 대중적 인기를 끈 반면,
바흐는 수학공식 대입하듯 음악을 만들어 엄격절제된 음악을 만들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