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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1일 토요일

마가복음 14:27~14:42

성경모임 추구자료 (5)
2011. 10. 07(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27~14:42
[개요]

   4. 제자들에게 경고하심 (14:27-31)
   5. 겟세마네를 체험하심 -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분부하심 (14:32-42)


주님의 죽음과 부활 안으로 이끌려짐 

마가복음 14장과 15장을 읽을 때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안으로 이끌려졌다는 것을 본다. 결코 주 예수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베드로가 장담했을 때 그는 아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실족할지라도 자기는 실족하지 않으리라고 선언했다. 그는 계속하여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14:31)라고 했다. 그러나 장담한지 얼마 안되어 그는 완전히 주 예수를 부인했다. 주님을 부인한 후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14:72). 매우 참된 의미에서 이것은 베드로의 십자가에 못 박힘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그는 울었다.

그리스도의 재산출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의하면, 베드로는 죽음의 과정을 통과했을 뿐 아니라 또한 주님의 부활과 승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가 오순절 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고 승천한 사람이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재산출이었다. 베드로는 이 그리스도의 복사판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안으로 이끌려진 베드로는 또한 그리스도로 적셔져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였으며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그가 되셨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오순절 날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복사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복음의 기록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재산출이 되기 위해 긴 과정을 통과했음을 가리킨다. 이 과정은 1장에서 어부인 베드로를 주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시작되었다. 그를 부르신 후 주님은 베드로를, 완성되는 데 삼년 이상이 걸린 과정 안으로 이끄셨다. 결국 오순절 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안으로 이끌려진 사람이 되었다.

새 사람을 산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이 새 사람을 산출하는 것임을 보았다. 새 사람을 산출하는 방법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대치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할 때 우주적인 대치이신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만유를 포함한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항상 충돌과 핍박이 있을 것이다. 사탄이 옛 창조를 점령하고 있으며, 주님의 일을 반대하기 위해 옛 창조에 속한 자들을 부추기기 때문에 옛 창조에 속한 것들은 우리를 방해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치가 되지 못하게 한다.
먼저 그리스도는 유댜교에 속한 모든 옛 것들을 대치하신다. 우리는 9장과 13장에서 그리스도가 모세와 엘리야, 심지어 성전까지 대치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이방 세계에 있는 것들을 대치하신다. 그분은 문화와 관습과 습관들과 옛 생활 방식을 대치하신다.



그리스도가 이러한 대치이시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은 적극적인 목적에 이바지한다. 충돌을 통해 우리는 죽음에 넘겨지며 부활 안으로 인도된다. 이것은 핍밥과 충돌을 통해 대적이 할 수 있는 전부는 결국 부활 생명의 흐름이 해방되도록 도울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할렐루야, 새 사람을 산출하는 흐름은 하나님의 왕국이 될 것이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산출된다. 주님의 죽음과 부화을 통해 우리는 새 사람의 산출을 위한 만유를 포함한 우주적인 대치이신 그분을 누린다.

마가복음 14:12~14:26

성경모임 추구자료 (4)
2011. 09. 29(목)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12~14:26
[개요]
   3. 만찬을 제정하심 (14:12-26)


유월절의 대치

베다니에서 잔치를 누리신 후에 주 예수님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고 유월절의 대치로서 그분의 만찬을 설립하셨다(14:12-26). 주님은 그의 두 제자에게 유월절 잔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도록 권하셨다(12-16절).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에서 그것은 유월절의 마지막 잔치였다. 왜냐하면 그때로부터 유월절은 주님의 상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옛 경륜이 새 경륜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대신에 주님의 상, 즉 주님의 만찬을 지킨다.

노예-구주를 기념함 

신약의 새로운 이 실행은 믿는이들을 위해 주신 그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고전 11:24) 그들의 죄들을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심으로(마 26:28) 노예-구주를 기념하는 것이다. 떡은 생명(요 6:35), 즉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며, 잔은 축복(고전 10:16), 즉 그들의 분깃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시 16:5). 죄인들인 그들의 분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다.(계 14:10). 그러나 노예-구주께서 그들을 위해 잔을 마시셨고(요 18:11), 그분의 구원은 그들의 분깃, 즉 넘치는(시 23:5) 구원의 잔이 되었으며(시 116:13), 이 잔의 내용은 그들의 만유를 포함한 축복이신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잔은 이러한 떡과, 그분의 믿는이들이 이 같은 잔치이신 그분을 누림으로 그분을 기념할 수 있도록 그분이 세운 상과(고전 10:21) 잔치인 노예-구주의 만찬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의 풍성과 기묘한 구원을 온 우주에 간증하며, 구속하여 생명을 분배하는 그분의 죽음을 전시한다(고전 11:26). 그분의 몸에서 분리된 그분의 피는 그분의 죽음을 표명한다.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됨  

주님의 상에 있는 떡은 우리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려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찢기우신 그분의 몸을 상징한다. 이 생명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전 12:27). 이 또한 상에 있는 떡으로 상징된다(고전 10:17). 그러므로 이 떡을 취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갖는다.(고전 10:16).
주님은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우셨다. 주님의 생명의 해방은 부활 안에 있다. 그러므로 떼어지는 것은 죽음의 문제이며 해방은 부활의 문제이다. 십자가 위에서 깨어짐을 통해 주님은 우리가 이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 안으로 부터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실 수 있었다. 주님의 신성한 생명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 즉 그분의 확장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떡을 누림으로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됨을 가리킨다.
그분의 확장인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은 또한 고린도전서 10장 17절에서 가리키는 것처럼 상 위에 있는 떡으로 상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떡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갖는다.

피와 언약과 잔
주님의 피는 우리를 타락한 상태로부터 하나님께로, 즉 아담의 타락을 통해 우리가 잃었던 기업에로,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에로 구속했다. 주님의 상에 관하여(고전 10:21) 떡은 우리가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잔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우리의 누림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잔은 축복의 잔이라 불리운다(고전 10:16). 이 잔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분깃인 하나님 자신이 있다.(시 16:5). 아담 안에서 우리의 분깃은 하나님의 진노늬 잔이었다(계 14:10).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그 잔을 마시셨으며(요 18:11) 그분의 피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잔이 되었으며(시116:13) 넘치는 전이 되었다(시23:5). 이 잔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을 갖는다(고전 10:16).

떡과 잔
주 예수께서 그분의 만찬을 설립하셨을 때 그분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14:22)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잔을 가지사 그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4절)"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은 한 덩어리의 떡과 잔을 포함한다.
성경적인 용법에 의하면 떡은 생명을 상징한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요 6:35). 이것은 성경에서 떡이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가리킨다. 더욱이 성경적인 용법에 의하면 잔은 축복의 분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잔은 축복의 잔이라 불리운다. 떡은 생명에 속한 것이며 잔은 축복에 속한 것이다. 확실히 이 생명은 신성한 생명이며 이 축복은 신성한 축복이다. 사실 생명과 축복은 삼일 하나님, 즉 영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원한 생명은 삼일 하나님이다. 당신은 신성한 축복이 무엇인지 아는가? 신성한 축복 역시 삼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축복은 사실상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축복이 됨
삼일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축복이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것이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은 음식은 소화되어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된다. 어떤 것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려면 그것은 유기적이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돌멩이를 삼킨다면 그 돌은 당신의 생명 공급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돌이 살아 있거나 유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유기적인 것만을 소화할 수 있으며 우리 안으로 흡수하여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되게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 공급과 심지어는 우리의 생명이 되려면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소화 흡수 되어야 한다. 확실히 삼일 하나님은 살아있으며 유기적이다.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하나의 떡 덩어리, 즉 생명의 떡이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떡 덩어리, 즉 생명의 떡이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51절), 그리고 그분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57절). 생명의 떡이신 주 예수를 먹는 믿는 자마다 그분으로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생명의 떡을 먹을 때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소화되어 유기적으로 우리 안으로 흡수 된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삼일 하나님은 유기적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와 바로 우리 영적 존재의 섬유질 안으로 흡수되어 우리의 생명 공급과 생명이 되신다.

주님의 상에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에 관한 깊은 의미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단지 그분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분이 겪으신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러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합당하게 기념하는 것이 그분을 먹어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그분을 취하는 것임을 본다. 상위에 있는 떡은 우리가 분석하거나 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떡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취하여 먹기위한 것이다. 이 떡은 소화 흡수되어 바로 우리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는 심오하다.
주님의 상의 떡을 먹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들어오며 사실상 그분이 우리가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먹는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먹은 음식이 결국 우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음식이 우리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음식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와 우리가 먹어 소화 흡수한 음식사이에 유기적인 결합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안으로 흡수된 음식과 연합된다.

내적인 부활을 체험함



우리는 주님의 상이 주님 자신과 그분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증가인 그분의 비밀한 몸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주님의 상이 그분의 부활과 관련이 있는가? 언제든지 우리가 주님을 먹어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분을 소화 흡수 할 때마다 우리는 내적인 부활을 체험한다. 우리는 물질적인 음식 먹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때때로 나는 저녁이 되기 전에 피로하고 약해진다. 그러나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은 후에 나는 다시 살아난다. 나는"부활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먹은 음식은 나를 소생시키는 생명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우리가 주 예수를 먹을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부활 생명이 되신다.

그 영

그 영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온 존재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온 존재와, 그분께서 성취하시고 획득하시고 달성하신
모든 것을 적용하신다. 이처럼 그분은 한 신성한 적용이 되셨다. 아버지는 경륜을 세우셨고,
아들은 그것을 성취하셨으며, 그 영은 아들께서 성취하신 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러므로 그 영은 적용이시다.

마가복음 11:27~12:44

성경모임 추구자료 (1)
2011. 05. 25()
진도: 마가복음 11:27~12:44
[개요]
C. 시험 받으시고 검사받으심 (11:27-12:44)
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에게 (11:27-12:12)
2.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에게 (12:13-17)
3. 사두개인들에게 (12:18-27)
4. 한 율법학자에게 (12:28-34)
5. 모든 사람의 말문을 막으심 (12:35-37)
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심 (12:38-40).
7.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심 (12:41-44)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의 이 기간 동안에 노예-구주는, 복잡하고 간교한 질문을 함으로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력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첫 번째로 유대 종교의 권위를 대표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그분의 권위에 관해 주님께 질문을 했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관념에 따른 질문이었다. 두 번째로 근본주의적인 바리새인들과 정치적인 헤롯 당원들은 그분께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 세 번째로 현대주의적인 사두개인들은 그분께 근본적인 신앙, 특별히 부활에 관계된 신앙에 관해 질문을 했다. 네 번째로 서기관, 즉 율법사는 그분께 성경해석과 관련 있는 질문을 했다. 그들의 모든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신 후에 주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질문하셨다. 그들의 질문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성경해석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분의 질문은 그리스도, 즉 모든 영적이고 신성한 것들의 중심이신 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문자로 된 성경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관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12 35절부터 37절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질문을 하셨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물으신 후 주 예수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윗의 성령 안에서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바 아래 둘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것이니, 그분의 신성 안에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이시며,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부분적인 성경 지식밖에 없었다. 즉 그분이 그분의 인성을 따라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나머지 부분을 알지를 못했다.
헛된것과 실제의 대비
그분은 제자들에게 공허하고 헛된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과부의 내적 실제를 높이심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서기관은 공허하게 말하는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어떤자이며, 이 과부는 내적 실제를 갖고 있는 믿는이를 상징한다. 이 사건들을 상고할 때 우리는 서기관이 되는 대신에 가난한 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다. 서기관들에게는 공허함과 헛됨이 있으며 과부에게는 내적 실제가 있다. 우리는 실제를 귀히 여기고 공허함을 주의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뛰어나게 말을 잘하며 웅변적이고 지식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가난하나 실제로 충만할 수가 있다. 돈의 문제보다 더 믿는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것은 없다. 돈이 믿는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이유는 인간 생활에서 돈이나 물질적인 소유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돈과 물질은 당신에게 하나님께 대한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