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모임 추구자료 (4회)
2011. 09. 29(목)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12~14:26
[개요]
3. 만찬을 제정하심 (14:12-26)
유월절의 대치
베다니에서 잔치를 누리신 후에 주 예수님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고 유월절의 대치로서 그분의 만찬을 설립하셨다(14:12-26). 주님은 그의 두 제자에게 유월절 잔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도록 권하셨다(12-16절).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에서 그것은 유월절의 마지막 잔치였다. 왜냐하면 그때로부터 유월절은 주님의 상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옛 경륜이 새 경륜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대신에 주님의 상, 즉 주님의 만찬을 지킨다.
노예-구주를 기념함
신약의 새로운 이 실행은 믿는이들을 위해 주신 그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고전 11:24) 그들의 죄들을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심으로(마 26:28) 노예-구주를 기념하는 것이다. 떡은 생명(요 6:35), 즉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며, 잔은 축복(고전 10:16), 즉 그들의 분깃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시 16:5). 죄인들인 그들의 분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다.(계 14:10). 그러나 노예-구주께서 그들을 위해 잔을 마시셨고(요 18:11), 그분의 구원은 그들의 분깃, 즉 넘치는(시 23:5) 구원의 잔이 되었으며(시 116:13), 이 잔의 내용은 그들의 만유를 포함한 축복이신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잔은 이러한 떡과, 그분의 믿는이들이 이 같은 잔치이신 그분을 누림으로 그분을 기념할 수 있도록 그분이 세운 상과(고전 10:21) 잔치인 노예-구주의 만찬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의 풍성과 기묘한 구원을 온 우주에 간증하며, 구속하여 생명을 분배하는 그분의 죽음을 전시한다(고전 11:26). 그분의 몸에서 분리된 그분의 피는 그분의 죽음을 표명한다.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됨
주님의 상에 있는 떡은 우리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려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찢기우신 그분의 몸을 상징한다. 이 생명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전 12:27). 이 또한 상에 있는 떡으로 상징된다(고전 10:17). 그러므로 이 떡을 취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갖는다.(고전 10:16).
주님은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우셨다. 주님의 생명의 해방은 부활 안에 있다. 그러므로 떼어지는 것은 죽음의 문제이며 해방은 부활의 문제이다. 십자가 위에서 깨어짐을 통해 주님은 우리가 이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 안으로 부터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실 수 있었다. 주님의 신성한 생명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 즉 그분의 확장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떡을 누림으로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 됨을 가리킨다.
그분의 확장인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은 또한 고린도전서 10장 17절에서 가리키는 것처럼 상 위에 있는 떡으로 상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떡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갖는다.
피와 언약과 잔
주님의 피는 우리를 타락한 상태로부터 하나님께로, 즉 아담의 타락을 통해 우리가 잃었던 기업에로,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에로 구속했다. 주님의 상에 관하여(고전 10:21) 떡은 우리가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잔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우리의 누림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잔은 축복의 잔이라 불리운다(고전 10:16). 이 잔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분깃인 하나님 자신이 있다.(시 16:5). 아담 안에서 우리의 분깃은 하나님의 진노늬 잔이었다(계 14:10).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그 잔을 마시셨으며(요 18:11) 그분의 피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잔이 되었으며(시116:13) 넘치는 전이 되었다(시23:5). 이 잔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을 갖는다(고전 10:16).
떡과 잔
주 예수께서 그분의 만찬을 설립하셨을 때 그분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14:22)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잔을 가지사 그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4절)"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은 한 덩어리의 떡과 잔을 포함한다.
성경적인 용법에 의하면 떡은 생명을 상징한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요 6:35). 이것은 성경에서 떡이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가리킨다. 더욱이 성경적인 용법에 의하면 잔은 축복의 분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잔은 축복의 잔이라 불리운다. 떡은 생명에 속한 것이며 잔은 축복에 속한 것이다. 확실히 이 생명은 신성한 생명이며 이 축복은 신성한 축복이다. 사실 생명과 축복은 삼일 하나님, 즉 영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원한 생명은 삼일 하나님이다. 당신은 신성한 축복이 무엇인지 아는가? 신성한 축복 역시 삼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축복은 사실상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축복이 됨
삼일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축복이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것이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은 음식은 소화되어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된다. 어떤 것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려면 그것은 유기적이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돌멩이를 삼킨다면 그 돌은 당신의 생명 공급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돌이 살아 있거나 유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유기적인 것만을 소화할 수 있으며 우리 안으로 흡수하여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되게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 공급과 심지어는 우리의 생명이 되려면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소화 흡수 되어야 한다. 확실히 삼일 하나님은 살아있으며 유기적이다.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하나의 떡 덩어리, 즉 생명의 떡이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떡 덩어리, 즉 생명의 떡이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51절), 그리고 그분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57절). 생명의 떡이신 주 예수를 먹는 믿는 자마다 그분으로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생명의 떡을 먹을 때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소화되어 유기적으로 우리 안으로 흡수 된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삼일 하나님은 유기적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와 바로 우리 영적 존재의 섬유질 안으로 흡수되어 우리의 생명 공급과 생명이 되신다.
주님의 상에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에 관한 깊은 의미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단지 그분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분이 겪으신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러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합당하게 기념하는 것이 그분을 먹어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그분을 취하는 것임을 본다. 상위에 있는 떡은 우리가 분석하거나 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떡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취하여 먹기위한 것이다. 이 떡은 소화 흡수되어 바로 우리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는 심오하다.
주님의 상의 떡을 먹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들어오며 사실상 그분이 우리가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먹는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먹은 음식이 결국 우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음식이 우리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음식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와 우리가 먹어 소화 흡수한 음식사이에 유기적인 결합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안으로 흡수된 음식과 연합된다.
내적인 부활을 체험함
우리는 주님의 상이 주님 자신과 그분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증가인 그분의 비밀한 몸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주님의 상이 그분의 부활과 관련이 있는가? 언제든지 우리가 주님을 먹어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분을 소화 흡수 할 때마다 우리는 내적인 부활을 체험한다. 우리는 물질적인 음식 먹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때때로 나는 저녁이 되기 전에 피로하고 약해진다. 그러나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은 후에 나는 다시 살아난다. 나는"부활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먹은 음식은 나를 소생시키는 생명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우리가 주 예수를 먹을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부활 생명이 되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