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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1일 토요일

마가복음 14:43~15:15

성경모임 추구자료 (6)
2011. 10. 21(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43~15:15
[개요]

   IV.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노예-구주의 죽음과 부활(14:43-16:18)
    A. 그분의 죽음(14:43-15:47)
      1. 붙잡히심(14:43-52)
      2. 재판받으심(14:53-15:15)
        a.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14:53-72)
        b. 이방인을 대표하는 로마 총독에게 (15:1-15)


인자  

우리는 주 예수께서 거짓 고소를 받고 있는 동안에 잠잠하셨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분의 인격에 관해 그리스도 곧 찬송받을 자의 아들이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 주님은 찬송을 받을 자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자신을 인자로 언급하셨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이 땅에서 뿐 아니라 부활하신 후 하늘에서 하나님 오른편에서도(행7:56), 심지어 구름을 타고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때에도 인자이시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주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다. 사람이 없이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 땅에서 수행될 수 없다.

죽음의 과정을 통과함  

14장에서 주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서 심판을 통과하고 계시는 동안 베드로는 실패했다. 그의 실패에서 그는 주님의 죽음에 대한 체험을 통과했다. 주님을 친밀하게 따르는 모든 자들도 역시 그분의 죽음 안으로 이끌려졌다.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로 인해 주 예수님이 그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힘이었으며, 이러한 십자가에 못 박힘은 주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의 죽음안으로 이끌려질 필요가 있었다. 이는 그가 너무도 천연적이기 때문이었다. 담대한 그는 항상 앞장을 섰다. 분명히 이런 사람은 못 박힐 필요가 있었으며 사실 베드로는 못 박힌 것이었다. 비록 그가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주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의심할 바 없이 나중에 베드로는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한 후 자신이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 예수님은 승리에 찬 방식으로 죽음에 들어가셨으나 베드로는 실패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들어갔다. 이 실패는 베드로의 천연적인 존재를 드러냈으며 그것을 처리받을 수 있게했다.



주 예수님만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신 유일한 분이 아니다. 베드로로 대표된 우리 모두가 주 예수님과 함께 이 과정을 통과했다. 당신은 자신을 베드로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드러나 심판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있는 베드로들이다.

마가복음 14:01~14:11

성경모임 추구자료 (3)
2011. 06. 10(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01~14:11
[개요]
   2. 음모가 꾸며짐, 배반당하심, 사랑받으심 (14:1-11)


주님을 사랑할 기회를 붙잡음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은 교회 생활의 축소판이다. 이 축소판에 의하면 교회 생활은 주 예수를 사랑하는 깨끗케 된 문둥이들로 구성된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시몬과 그분께 기름을 부었던 여인이 했던 것처럼 그분을 그들의 완전한 대치로 취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성전을 위한 여지가 없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에 의해서도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5절).
거기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4-5절) 분낸 자들은 주님께 드리는 여인의 사랑을 허비라고 생각했다. 지난 십 구세기를 통해 수천의 귀한 생명들과 마음의 귀한 보물들과 높은 지위와 황금같은 장래들이 주 예수 위에 "허비" 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그분만이 사랑스럽고 그들의 예물을 드리기에 가치가 있다. 그들이 그분께 부어드린 것은 허비가 아니라 그분의 달콤함을 간증하는 향기였다.

교회생활에서 우리의 대치이신 그리스도

 
우리는 13장에서 주님이 그분의 죽음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14장에서도 이 준비를 계속했다. 주님의 준비는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새 사람을 산출할 것인가를 계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새 사람의 출생은 산고의 고난을 요구한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주님은 그들의 사랑을 누리심으로 계속하여 제자들을 준비하셨다. 깨끗케 된 문두잉들로 이루어진 집에 들어가면서 그분은 잔치와 아울러 기름 부음을 누리셨다. 잔치는 내적인 만족의 문제이며 기름 부음은 달콤한 향기로 주님께 문언가를 부어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주님은 만족하셨으며 기름 부음 받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닌 그분을 사랑하는 자 중의 하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주님은 모든 것을 대치하셨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 안에, 그들 주변에 그분 외에 아무것도 어떤 사람도 갖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 놀라운 인격, 그들에게 모든것 되신 분만 있었다.

우리는 14장 1절부터 11절에서 교회 생활의 축소판을 갖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별히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취하는 체험의 축소판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 축소판으로 묘사된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갖는다. 교회 생활 안에 있는 우리는 그분에 의해 께끗케 된 문둥이들이며 우리 마음 안에는 그분만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안에 , 우리 주위에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을 모든 것으로 취한다.




노예구주를 따르는 자들 중 하나가 그분께 그녀의 사랑을 최고로 표현하는 동안 다른 자는 그분을 배신하려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그분을 귀히 여겼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은 그분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가복음 13:01~37

성경모임 추구자료 (2)
2011. 06. 02()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3:01~13:37
[개요]
D.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제자들을 예비시키심
   1. 다가올 일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주심 (13:01-37)


장차 될일 

그분의 죽음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시면서 노예-구주는 13장에서 그들에게 장차 될 일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후로부터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 시대 동안에 세상에서 발생할 일들이다. 이는 주후 70년에 발생할 성전의 멸망과(1-2절) 그분의 부활 후에 시작하여 대환난 때까지 계속될 산고의 시초에 있는 재난과(3-8절) 교회 시대에서의 복음 전파와 핍박(9-13절), 이 시대의 마지막 삼 년 반에 있을 대환난과 그분의 다시 오심(14-27절), 교회 시대 전반에 걸쳐서 깨어 기도하며 노예-구주를 기다리는 것이다(28-37절). 빛 비추는 이같은 말씀은 고통 당하며 노예-구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날이 샐 떄까지 어두운 데서 빛나는 등불과" 같다(벧후1:19).
 복음전파와 핍박의 고난
당신은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각 세기는 복음 전파와 고난을 통한 새 사람의 분만을 증거한다. 우리는 왜 새 사람이, 핍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복음 전파에 의해 출생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타락한 때로부터 옛 창조는 하나님의 대적 사탄의 강탈하는 손 아래 있어 왔다. 하나님은 이제 그분의 옛 창조로부터 새 사람을 산출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대적은 이같은 일들을 허락하길 원치 않으므로 모든 것들과 모든 문제들을 동원하여 새 사람의 산출을 방해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륜을 거스른다. 이러한 이유로 핍박이 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어선 때로부터 이러한 핍박은 계속 일어났다. 핍박은 먼저 그들의 종교를 갖고있는 유대인들로부터 왔으며 정치 안에있는 로마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자들에 대한 핍박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두 가지 일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는 복음전파와 핍박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끝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주권이다. 역대로 주님의 신실한 자들은 어떤 대가,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한편 옛 사람과 그 사회와 문화로 된 옛 창조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은 대대적인 핍박을 감행했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사탄의 반대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그 결과는 사탄이나 세상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궁극적인 결과는 새사람의 완전한 분만이다.




새 사람의 출생을 위한 긴 과정 후에 주 예수는 성도들이 휴거될 때에 새 사람을 영접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휴거가 있을 것이며 이 휴거가 새 사람의 분만을 마무리할 것임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보고 마가복음 13장을 다시 읽는다면 우리는 말씀으로부터 신선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주님은 그분을 친밀하게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러한 이해 안으로 이끌고 계셨다.

마가복음 11:27~12:44

성경모임 추구자료 (1)
2011. 05. 25()
진도: 마가복음 11:27~12:44
[개요]
C. 시험 받으시고 검사받으심 (11:27-12:44)
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에게 (11:27-12:12)
2.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에게 (12:13-17)
3. 사두개인들에게 (12:18-27)
4. 한 율법학자에게 (12:28-34)
5. 모든 사람의 말문을 막으심 (12:35-37)
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심 (12:38-40).
7.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심 (12:41-44)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의 이 기간 동안에 노예-구주는, 복잡하고 간교한 질문을 함으로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력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첫 번째로 유대 종교의 권위를 대표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그분의 권위에 관해 주님께 질문을 했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관념에 따른 질문이었다. 두 번째로 근본주의적인 바리새인들과 정치적인 헤롯 당원들은 그분께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 세 번째로 현대주의적인 사두개인들은 그분께 근본적인 신앙, 특별히 부활에 관계된 신앙에 관해 질문을 했다. 네 번째로 서기관, 즉 율법사는 그분께 성경해석과 관련 있는 질문을 했다. 그들의 모든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신 후에 주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질문하셨다. 그들의 질문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성경해석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분의 질문은 그리스도, 즉 모든 영적이고 신성한 것들의 중심이신 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문자로 된 성경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관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12 35절부터 37절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질문을 하셨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물으신 후 주 예수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윗의 성령 안에서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바 아래 둘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것이니, 그분의 신성 안에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이시며,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부분적인 성경 지식밖에 없었다. 즉 그분이 그분의 인성을 따라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나머지 부분을 알지를 못했다.
헛된것과 실제의 대비
그분은 제자들에게 공허하고 헛된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과부의 내적 실제를 높이심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서기관은 공허하게 말하는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어떤자이며, 이 과부는 내적 실제를 갖고 있는 믿는이를 상징한다. 이 사건들을 상고할 때 우리는 서기관이 되는 대신에 가난한 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다. 서기관들에게는 공허함과 헛됨이 있으며 과부에게는 내적 실제가 있다. 우리는 실제를 귀히 여기고 공허함을 주의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뛰어나게 말을 잘하며 웅변적이고 지식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가난하나 실제로 충만할 수가 있다. 돈의 문제보다 더 믿는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것은 없다. 돈이 믿는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이유는 인간 생활에서 돈이나 물질적인 소유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돈과 물질은 당신에게 하나님께 대한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