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7일 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classic travel]-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bach)와 헨델(handel)(하)


스무명의 자녀를 둔 바흐 / 평생 독신으로 지낸 헨델

 바흐는 두번결혼하여 총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번째 부인은 7명의 자녀를 낳고, 결혼 13년차에 세상을 떠났다. 두번째 아내는 전 부인의 자녀 7명에 추가로 13명의 자녀를 낳고 그들 모두를 훌륭하게 돌보면서도 남편의 악보정리까지 해 냈다. 스무명의 자녀가있는 왁자지껄한 집안분위기속에서도 바흐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쳐 대부분이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 그중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런던의 바흐'라고 불릴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헨델은 한군데 정착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생의마감

두사람은 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눈 치료를 받고 실명하게 되었다. 헨델은 평생 왕의 총애를 받다가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영예를 받았지만, 바흐는 죽어서도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가난한 탓에 자녀들은 바흐의 악보를 헐값에 팔았고, 그의 악보들은 여러군데로 흩어지게 되었다. 후에 맨델스존이 바흐를 재평가 하여 널리 알리면서, 완전히 재평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바로크음악

바흐와 헨델은 고전파 음악의 창시자라고 할수 있다. 당대 사회문화는 바로크양식이 흥황할 때였는데,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루투갈 단어로, 르네상스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바로크양식이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바로크는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갖는데, 17세기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은 탐험과 항해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탐험과 항해술의 발달은 천문학과 과학의 발달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지구가 크고 세상은 넓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 큰 건물과 더 웅장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종교적으로는 기존 천주교의 부패에 대항하여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에 위협을 느낀 천주교는 기존보다 더 크고 웅장한 성당을 짓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바로크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은 프랑스, 영국, 독일등 유럽각국에 영향을 끼쳤고, 프랑스에서는 오페라와 발레가 전성기를 누렸으며, 독일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작곡가들의 종교음악 칸타타, 푸가등이 발전되었다.

바로크음악의 특징

바로크음악은 기존의 종교 및 성악중심의 음악이 기악중심으로 전환된 것이 특징이다.
소규모 연주회가 대규모 연주회로 변화됨에 따라 악기의 종류도 많아지게 되었다. 또한 다성음악(polyphony)의 시대가 도래되었는데, 이는 두개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노래하여 결합하는데 대위법(counter point)라고도 한다. 바흐의<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헨델의<메시아>같은 곡을 들어보면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과는 다르게 복잡함이 느껴진다.





추천음악

바흐-이탈리아 협주곡(Concerto Italian)


바하의 곡중 대위법의 강박을 벗어나 비교적 편하게 들을수 있는 곡이다. 여느 바하의 곡처럼 무겁거나 엄숙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다가갈수 있는 곡이다.

특히 글렌 골드(Glenn Gould)는 바흐전문가라고도 불리는데, 그는 바흐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린 연주가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괴짜스런면은 있지만 말이다..






헨델-오페라<세르세>중 '라르고'


주인공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가 뜰에 나와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부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리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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