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문학·책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문학·책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3월 4일 수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The Classic travel)]-고전주의 음악의 완성(모차르트/하이든)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서로다른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기에 이르른다.

형식과 내용,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실현하려는 고전주의의 이상은
다양한 느낌을 대조하면서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소나타(Sonata)형식은 바로크시대에도 있긴 했지만,
고전주의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독립장르로 자리잡았다.
바로크시대의 단일주제성이 '서로다른것의 조화'를 추구했던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는 복수의 주제로 재미와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서로다른 분위기를 지닌 세 부분 -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 이
각각 완결성을 가지지만, 또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성, 조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다.

제시부는 밝고 빠른 느낌이고,
전개부는 차분하고 느린 곡조,
마지막 재현부는 제시부의 느낌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나타형식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형식으로 고
전주의 음악을 대표하게 되었고, 이 소나타 형식의 완성을 통해
서양 음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전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복잡한 대위법을 버리고,
주 멜로디에 화음 반주를 넣어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선택했다.

즉 다성음악이 화성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주 멜로디가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수 있게 되었다.

2015년 3월 2일 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The Classic travel)]-모차르트의 오페라들과 그의 말년(Operas of Mozart)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그의 말년

 모차르트 당대의 시대상 모차르트가 성인이 될 무렵,
곧 18세기 후반 유럽은 격동을 겪고 있었다.
 다름아닌 산업혁명의 바람이 그것이었다.
 공장생산으로 인해 중산층이 귀족이나 왕보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하였다.
 그들은 예전처럼 더이상 왕이나 귀족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
 음악계의 경우에도 이와 편승하여,
 예전처럼 더이상 음악가들이 왕이나 귀족들에게 100% 종속되어 일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작곡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원래 성격상 남 밑에서 일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그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 한군데서 일을 오해 하지 못했고, 
곧 독립적 음악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또한 위와 같은 시대적 조류도 모차르트가
 독립 음악가의 길을 가는데 일조하였고,
 후에 태어난 베토밴과 같은 음악가들은 혼자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모차르트는 많은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들을 지었지만, 
그중에서도 오페라가 으뜸이다.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는 
모차르트가 독립음악가가 되면서 처음 작곡한 곡이고,
 타락한 귀족들을 비웃는 내용의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그리고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라 불리운다. ​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마술피리>

 모차르트의 말년 

 독립음악가는 곧 프리랜서인데,
 우리가 잘 알듯이 프리랜서들은 수입이 일정치 않다. 
곧 대기업에 다니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신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만, 
프리랜서가 되면 자유로운 대신
불규칙적 수입으로 살아야 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모차르트또한 그러했다.
 오페라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재태크 기술이 없었는지..
 모두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자기자신이 우선 경제감각이 부족했고,
아내 콘스탄체또한 사치가 심해서 였다.

 곧 모차르트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건강또한 악화되면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불후의 명작 교향곡 39, 40, 41번을 작곡하고
 마지막 해까지 <마술피리>,
<레퀴엠>을 작곡하고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너무 가난하게 죽은 나머지, 묘비없는 무덤으로 쓸쓸히 남겨지고 말았다.







2015년 3월 1일 일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classic travel]-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The father of symphony)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하이든이 수많은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고용주 덕분이었다.
당대 음악가들은 고용주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작곡 할 수있었기 때문에,
본인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슬퍼도 기쁜음악을 혹은 기뻐도 슬픈음악을 작곡하여야 했다.
반면 하이든은 29세때 헤스테르하지 후작의 부악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하도록 허락 받았다.
그와 함께한 31년간 하이든은 약 100곡이상의 교향곡과 70곡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마치 좋은 건축주를 만나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많은 수작을 남긴 건축가들과 같다고 할까.

하이든이 교향곡을 그토록 작곡한 이유는 고전주의의 시대상과
교향곡의 형식이 아주 절묘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균형과 조화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음악형식이었던 것이다.

보통 교향곡(symphony)는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매우 빠르게 연주된다.
또한 보통 3악장에서는 3/4박자의 왈츠풍의 음악을 많이 넣는다.
글에서 따지면 기승전결과 같은 음악이 바로 교향곡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조화와 균형의 곡이다.
교향곡은 당대 유행했던 고전주의를 가장 잘 표현해 담을 수 있는 형식이었다.

하이든이 지은 교향곡들은 특이한 별칭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들면
<아침>, <낮>, <저녁>, <슬픔>, <고별>, <수난>, <사냥>, <왕비>
등이 있는가 하면,
<곰>, <암닭>, <화재>, <멍청이>
등과 같은 익살스런 제목의 교향곡도 있다.

이러한 별칭이 붙은 이유는 그가 너무 많은 교향곡을 지었기 떄문에
후세 사람들이 곡들을 구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쉽게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Haydn)



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
 1732년 오스트리아 로라우의 대장간 집안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재능이 있었지만, 음악을 잘 모르는 부모를 만나 하마터면 재능이 완전히 뭍혀버릴수도 있었다.
다행히 6살때 그의 친척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가 교욕을 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8살때, 빈의 유명한 교회 오르간 연주자의 눈에 띄어 합창단원에 입단하게 되었다.
10년동안 합창단원생활은 변성기를 맞이하면서 종료되었다.
그 이후에 귀족들의 자녀를 가르치던 콜라 포르포라를 만나
그의 반주자로 일하면서 차츰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성품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천재적 재능은 그가 여느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가며
습득했어야 할 사회성의 결핍을 가져왔고,
더군다나 그의 작은키나 못생긴 외모로 인한 열등감은 그를 더욱더 고립시켰다.


이런 모차르트와 상반되게, 하이든은 정말 인품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31년간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윗사람이나 동료들과 어떠한 마찰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다른사람을 배려하는 성격의 소유자 였다.
에스테르히지 후작 밑에서 일하던 시절,
하이든이 많은 곡을 발표하면서 그의 단원들은 휴가도 제대로 못갈정도로 바빠졌다.
이에 단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교향곡 45번 <고별>교향곡을 작곡했다.
마지막 공연중이 끝날때쯤, 단원들이 하나씩 촛불을 끄면서 나갔고,
이를 본 에스테르히지 후작은 하이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단원들 모두에게 장기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신동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아이큐가 230~250정도는 된다고 하니...

​ 
다섯살때 작곡을 시작했고,
여덟살때 교향곡 1번을 작곡했다.





열한 살 때는 오페라 <바스티안과 바스티엔>을 작곡했다.




열네살때는 아버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11분짜리 곡 알레그리가 작곡한 합창곡 <미제레레>를  한번듣고,
틀리지 않고악보를 그려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곡을 쓰면서 수정하는 일이 없이 한번에 곡을 썼다.
일반적으로 음악가는 한곡을 쓰기위해 수차례 악보를
썼다 찢었다를 반복하는 것과는 상반적인 일이다.
그는 머릿속에 이미 짜져있는 곡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당구를 치면서 작곡을 하고, 한곡을 써 내려가면서 이
미 머릿속에서 다른 곡을 구상할 정도로 그는 천재였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7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중 다섯을 잃고 딸 난넬과 막내 볼프강만 남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는 볼프강이 여섯살때 유럽전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빈에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를 하게되었을때,
모차르트는 실수로 넘어지게 되었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모차르트를 일으켜 주었다.
그때 모차르트는 감사하며 추후 자라서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그 여자는 훗날 우리가 아는 마리 앙투아 네트 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