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교향곡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교향곡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3월 3일 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The Classic travel)]-하이든의 나라사랑 (Haydn, the Patriot)

60세의 하이든은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으로 그를 초청한 사람은 다름아닌, 잘로몬 이란 사람이었는데,
그가 의뢰해서 만든 교향곡이 '잘로몬 교향곡이었다"



잘로몬 교향곡은 하이든 교향곡 제 93~104번까지 총 12곡을 지칭한다.

















영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하이든..
영국인들은 하이든도 헨델처럼 영국에 귀화하기를 원했지만,
하이든은 조국으로의 귀환은 원했다.

영국에서 하이든은


<천지창조>


<사계>를 작곡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국가를 작곡했는데,


현재는 독일국가로 쓰이고 있다.



놀랍게도 이 곡은 현재 독일 국가이자 유럽연합(EU)의 국가로도 사용되고 있다.
하이든은 자신이 작곡한 조국 오스트리아 국가가

이렇게 사용될줄 알고 있었을까...

2015년 3월 1일 일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classic travel]-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The father of symphony)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하이든이 수많은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고용주 덕분이었다.
당대 음악가들은 고용주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작곡 할 수있었기 때문에,
본인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슬퍼도 기쁜음악을 혹은 기뻐도 슬픈음악을 작곡하여야 했다.
반면 하이든은 29세때 헤스테르하지 후작의 부악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하도록 허락 받았다.
그와 함께한 31년간 하이든은 약 100곡이상의 교향곡과 70곡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마치 좋은 건축주를 만나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많은 수작을 남긴 건축가들과 같다고 할까.

하이든이 교향곡을 그토록 작곡한 이유는 고전주의의 시대상과
교향곡의 형식이 아주 절묘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균형과 조화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음악형식이었던 것이다.

보통 교향곡(symphony)는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매우 빠르게 연주된다.
또한 보통 3악장에서는 3/4박자의 왈츠풍의 음악을 많이 넣는다.
글에서 따지면 기승전결과 같은 음악이 바로 교향곡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조화와 균형의 곡이다.
교향곡은 당대 유행했던 고전주의를 가장 잘 표현해 담을 수 있는 형식이었다.

하이든이 지은 교향곡들은 특이한 별칭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들면
<아침>, <낮>, <저녁>, <슬픔>, <고별>, <수난>, <사냥>, <왕비>
등이 있는가 하면,
<곰>, <암닭>, <화재>, <멍청이>
등과 같은 익살스런 제목의 교향곡도 있다.

이러한 별칭이 붙은 이유는 그가 너무 많은 교향곡을 지었기 떄문에
후세 사람들이 곡들을 구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쉽게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Haydn)



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
 1732년 오스트리아 로라우의 대장간 집안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재능이 있었지만, 음악을 잘 모르는 부모를 만나 하마터면 재능이 완전히 뭍혀버릴수도 있었다.
다행히 6살때 그의 친척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가 교욕을 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8살때, 빈의 유명한 교회 오르간 연주자의 눈에 띄어 합창단원에 입단하게 되었다.
10년동안 합창단원생활은 변성기를 맞이하면서 종료되었다.
그 이후에 귀족들의 자녀를 가르치던 콜라 포르포라를 만나
그의 반주자로 일하면서 차츰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성품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천재적 재능은 그가 여느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가며
습득했어야 할 사회성의 결핍을 가져왔고,
더군다나 그의 작은키나 못생긴 외모로 인한 열등감은 그를 더욱더 고립시켰다.


이런 모차르트와 상반되게, 하이든은 정말 인품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31년간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윗사람이나 동료들과 어떠한 마찰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다른사람을 배려하는 성격의 소유자 였다.
에스테르히지 후작 밑에서 일하던 시절,
하이든이 많은 곡을 발표하면서 그의 단원들은 휴가도 제대로 못갈정도로 바빠졌다.
이에 단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교향곡 45번 <고별>교향곡을 작곡했다.
마지막 공연중이 끝날때쯤, 단원들이 하나씩 촛불을 끄면서 나갔고,
이를 본 에스테르히지 후작은 하이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단원들 모두에게 장기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음악의 신동 모차르트(Mozart)/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Hydn) (프롤로그)



<시대의 천재 모차르트>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영화는
<Amadeus>아마데우스 인데, 거기서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리 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신이 왜 하필 인격적으로 천박하고 엉망진창인 모차르트에게
엄청난 음악적 재능을 주었는지에 대해 원망한다.

사실 실존인물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그렇게 미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차르트보다 고귀한 대우를 받았다.

어쨋든 그만큼 모차르트는 음악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인류 역사상 몇 안되는 천재였다고 한다.
바로크시대에 대위법대신 화성음악과 소나타 형식을 발전시키는 업적을 세운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과는 다르게
그는 어린이아같고 제멋대로인데다 변덕스럽기 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인품을 압도하는 그의 천부적 재능과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심지어 그를 빗대어 "하늘에서 잠시 쫓겨난 음악천사"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천부적재능때문이었던지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는 주로 오페라와 협주곡, 교향곡등 두루두루 많은 장르의 음악을 남겼다.





<신사 하이든>
그에 반해 동시대에 활동했던 하이든은 무척 어른스럽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는 상냥하고 친절해서 주위 사람들로 존경을 받고 생활도 모범적이었다.
정직하고 근면한데다 유머까지 갖춘 하이든의 별명은 '파파하이든'이었다고 한다.
 
그는 모차르트와 다르게 일흔여섯까지 살면서 고전파 음악의 대부역할을 다 하였다.
한가지 특징은 그가 교향곡을 주로 작곡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