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9일 목요일

미사강변 리버뷰자이의 모든것 (입지에 관하여)

미사강변도시 리버뷰자이 전격분석


<리버뷰 자이 투시도_자료출처 : 미사강변리버뷰자이 공식 홈페이지>

요즘 엄청나게 이슈가 되고 있는 미사강변 리버뷰 자이..작년 미사강변 센트럴자이에 이어 이번엔 강변조망이 가능한 한강변의 A1블럭에 위치한 리버뷰자이가 미사강변도시의 키 워드로 떠 오르고 있다. 사실 미사강변도시 지도를 놓고 보면 별 볼일없는 북쪽 끝터리에 자리잡은 변두리 블럭처럼 보이지만, 사실 북쪽 한강조망 및 한강공원으로의 접근성, 지금 한참 검토되고 있는 지하철 9호선의 연장예정 등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노른자 위의 노른자라고 할 수 있는 요지이다. 게다가 홍보로 유명한 GS건설 자이 시리즈 이므로, 온통 언론으로 도배되어 지금은 금일 기준으로 '미사강변'만 검색창에 쳐도 바로 '미사강변 리버뷰자이'가 검색될 정도이다. 오늘은 그럼 리버뷰 자이가 어떤  지정학적 의미를 가지는지, 분양에 관한 분석 및 예상에 대해 포스팅 해보고자 한다.


위 미사강변도시 분양관련 지도를 보면(2014년 12월 기준) 좌측 북단의 A1블럭이 바로 미사강변 리버뷰자이의 위치이다. 언틋보면 남북으로 길쭉한 미사강변도시의 가장 끝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변두리로 보여진다. 하지만, 아까도 언급한바와 같이, 이 지역은 강변 조망권과 추후 9호선 예정 및 경춘고속도로와의 접근성(선동IC까지 1분거리)를 생각할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위치임에 틀림없다.

​<미사강변리버뷰자이에서 경춘고속도로 진입까지 거리-785m>
작년도부터 시작된 미사강변도시의 비정상적이리만큼 높아진 청약열기를 이어(지난해 발표된 ‘9.1부동산대책’에 따르면 택지개발촉진법이 시행 34년만에 폐지되고 2017년까지 LH의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이 중단된다. 이에 따라 대규모 택지공급이 아닌 중소형 택지 위주로 신규주택이 공급될 예정이어서 향후 최소 3년간은 기존 조성중인 신도시, 택지지구 분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다.) 올해 첫 미사강변도시 분양이니 만큼 그 관심은 뜨겁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사강변도시의 경우 이제 남은 공공분양 물량이 현격히 줄어든 터라, 더욱더 그러하다. 올해 미사강변도시 공급예정물량은 작년보다 2,600여 가구가 줄어든 총 4개 단지 3,090 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올해 이후는 분양물량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부동산 전문가에 따르면 "미사강변도시의 민간분양 아파트 분양권은 현재 평균적으로 3000~4000만원 가량 웃돈이 붙어있는 상황이며 특히 강변조망이 가능한 단지의 경우 5000만원이상의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되어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까도 언급한 작년 11월의 미사강변 센트럴자이의 경우 민간분양최초 1순위 청약마감에 최고 93대 1의 높은 경쟁율을 기록하며 2주만에 완판신화를 세웠다.
이번 두번째 공급인 미사강변리버뷰자이의 경우 지하 2층, 지상 29층에 5개동, 전용면적 91~132제곱미터의 중대형 평형 총 555가구로 구성되는데, 특히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단지이므로 가격적인 메리트는 더욱 더 크다.
더욱이 단지 바로 앞에 2만6천평 규모의 근린공원과 한강수변공원등 풍부한 녹지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수 있고 인근 망월초등학교나 은가람중학교 등은 도보로 통학할 수 있는 교육적 메리트도 가지고 있다.


거리는 좀 있지만, 이미 확정된 지하철 5호선 미사강변역 가지는 약 1.8킬로미터 거리로 남자 기준으로 도보로 약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로 어쨋든 도보이용은 가능해 보인다. 또한 현재 건설중인 아시아 최대 복합쇼핑몰인 '하남 유니온 스퀘어(2016년 완공예정)이 들어서면 그 가치는 더할나위 없이 올라갈 것이다. 또한 지금 검토용역이 진행중인 초미의 관심사 지하철 9호선 연장또한 확정될 경우 대단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지하철 5호선 노선과 지하철 9호선 (예상) 경로>
위 노선도는 현재 기본계획 수립이 남양주 양정까지 연결됨을 가정할때 억지스럽지 않게 선을 이어서 예상해 본 노선도 이므로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하지만, 분명 기본선형 자체는 위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 한참 토지매각중인 남양주 진건, 지금지구중 지금지구의 경우, 뚜렷한 대중교통 해법이 없는 상태이므로, 아마 남양주시는 지금지구또한 9호선 노선의 해택을 받는 지역으로 감싸안을 공산이 크다고 예상한다.
​이상을 종합하여 지정학적인 미사강변리버뷰자이의 이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강조망이 가능하다.
2) 한강수변공원과 인접한다.
3) ​교통의 요지이다. (경춘고속도로/지하철5호선 및 지하철9호선(예정)/제2경부고속도로)
4) 교육환경이 우수하다. (이는 학교와의 거리가 가까울 뿐 아니라, 인접한 블럭들 중 ​A3,A6,A10등이 85제곱미터 초과의 대형평형 블럭군들로 학군이 우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상이 미사강변 리버뷰자이에 대한 계략적 지장학적 이점과 특징들이다. 분명 내세울만한 뾰족한 것이 있는 뜨거운 감자임에는 틀림없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미사강변 리버뷰자이의 청약과 관련된 포스팅으로 찾아뵙겠다.

2015년 3월 18일 수요일

2015년도 프리츠커상(2015 Pritzker Prize/普利兹克建筑奖) 수상자 - 프라이 오토(Frei Otto/弗雷奥托)

2015년도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 수상자 - 프라이 오토(Frei Otto)

​<사진출처 : pritzkerprize.com>

1972년 뮌헨올림픽 Stadium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의 금년도 수상의 영예는 생태 건축가로 유명한 독일의 (고) 프라이 오토(Frei Otto)씨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프라이 오토 자신은 이 상에 대한 수상소식을 직접 듣지 못했다. 수상이 발표되기 하루전날 유고한 프라이 오토는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독일태생의 생태건축가로서, 한 독일건축사의 말을 빌리면​ 사실 건축디자이너이기 보다는 건축 엔지니어에 가까운 그가 프리츠커 상을 받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건축은 디자인과 기능이 분리되지 않고, 기능을 따라가는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인 뮌헨올림픽 스테이디움에는 필자도 개인적으로 두번 다녀왔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뮌헨을 방문했다면, BMW Belt와 더불어 꼭 한번 가봐야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Frei Otto의 대표작 Munchen Olympic Stadium  Photo © Christine Kanstinger>
그의 나이 50에 설계한 이 건물은 당대에는 감히 꿈꿀수 없었던 최첨단 구조물로(당대 우리나라의 비슷한 연배의 건물들이 대부분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며, 1988 서울올림픽 경기장의 구조와 비교해 보면 많은 수준차이를 느낄수 있다-물론 서울올림픽경기장도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이게 과연 1970년대 건물일까 할 정도로 수십년을 앞선 건물이다. 철골에 대한 해석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철골에 의한 막구조라고 한다면, 당시에는 해석 불가능 할 정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만, 매우 정교한 부재들을 사용하여 훌륭한 미관을 완성하였고, 이에 따라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구조나 생태와 관련된 건축물들은 사실 그간 건축계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전통적인 건축디자인이라기 보다는 엔지니어에 의한 역할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요즘처럼 경제성과 특히 환경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의 세태에 따라, 또 지구온난화라든지, 실제적인 사람들의 Amenity를 고려할때, 막연하게 멋진 디자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기능적 needs를 충족하고나서 그와 개연되는 디자인의 조화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고)프라이 오토의 금번 프리츠커상 수상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또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생태건축가와 구조기술자들 또한 영예를 받은 것이다.
과거 프리츠커상 수상자들도 그의 수상을 축하하며, 그의 수상이 당연한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2004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자하디드(Jaha hadid)는 그와 절친한 친구라고 밝히며 그의 연구 및 인장 구조에 대한 탐사는 영감과 계몽을 통해 충분히 수상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으며 1989년도 수상자인 프랭크게리(Frank O Gehry)는 그는 우리에게 건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뀌게 했으며, 앞으로의 인구 고령화시대에 대한 획기적인 솔루션을 제공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프라이 오토는 1925년 5월 31일 독일 Siegmar 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자유에 대한 강의에 참석한 이후 그의 이름을 ​자유를 뜻하는 형용사 Frei로 지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일까. 그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많은 혁신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오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조각가 였고, 학창시절에는 stonemasonry의 도제로 일했다. 그는 글라이더 비행기 설계를 취미생활로 즐겼는데, 이 활동은 공기 역학 및 구조에 대한 이해, 가벼운 프레임과 막의 구조에 대한 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Roof for the Multihalle (multi-purpose hall) in Mannheim, 1970–1975, Mannheim, Germany Photo © Frei Otto>

1943년 9월 그는 조종사로 군복무하게 되었다. 1945년 4월 뉘른베르크 근처에서 연합군에 붙잡혀 전쟁포로가 되었다. 이후 그는 프랑스 샤르트르 근처에서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포로신분으로 2년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캠프건축가로 일했는데, 그때 적은 구조체로 많은 구조지지 방법을 터득하였다. 1948년 프라이 오토는 베를린 기술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기위해 돌아왔다.
1950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 대학에서 사회학 및 도시 개발을 공부했다. 1952년 그는 프리랜서 건축가로 베를린에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설립한다. 1954년 베를린 기술 대학에서 토목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5년도에 카셀에 연방정원 전시회에서 세개의 임시경량구조체를 첫 작품으로 내 놓았다.​

프라이 오토는 많은 용도의 경량 텐트같은 구조체를 개척했다. 그는 경제적, 생태적 가치에 매료되었다. 그는 항상 양식의 최적의 형태를 결정하고 해당 동작을 테스트하기 위해 물리적 모델을 직접 만들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들은 프라이오토의 사업 구조분석을 위한 컴퓨터를 최대한 활용하였지만 계산의 기본 입력데이터 값은 반드시 물리적인 형태에서 찾았다.
경량구조에 대한 그의 염원은 1958년 그의 첫번째 새로운 연구소인 Zehlendorf 지구 연구소​를 통해 가속화 되었다. 향후 5년동안 그는 미국의 예일, 버클리, 메사추세츠, 하버드 대학에서 정지적인 수업을 진행하였다.
1962년 그는 '네트와 세포막과 강선으로 구성된 건물의 설계'라는 책을 발표했고, 1964년 슈투트 가르트 대학에서 새로 설립된 경량 구조 연구소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1967년 국제 유니버셜 박람회 독일관의 계획의 의뢰를 독일정부로 부터 받게 되었고 이 계기로 그는 독일관의 성공적인 건축으로 국제적으로 독일의 기술력을 과시할수 있도록 하였다.

​<The 1967 International and Universal Exposition or Expo 67, 1967, Montreal, Canada Photo © Frei Otto>
​이로 인해 1972년 귄터 베니쉬, 프라이 오토, 프리츠 레온 하르트에 의해 뮌헨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하게 되었다. 이 구조물은 관객들을 비와 태양으로 부터 보호할 수 있는 쌍곡선 막 캐노피 구조물로 올림픽 주 경기장, 수영장 건물의 패브릭 지붕구조체로 지금까지 훌륭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후 그의 많은 행적들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정도이고, 단 몇가지를 언급한다면  1980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Diplomatic club heart tent, 2000년 하노버 엑스포 일본관의 설계를 들 수 있겠다.


<Diplomatic Club Heart Tent, 1980, Riyadh, Saudi Arabia Photo © Frei Otto>


​<Japan Pavilion, Expo 2000, Hannover 2000, Hannover, Germany Photos by Hiroyuki Hirai>

​수 많은 찬사 가운데, 프라이 오토는 1974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토머스 제퍼슨 건축상과 메달을 수여받았다. 1982년도 독일 건축가 협회대상과 금메달, 2005년도 영국 왕립건축 연구소의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2015년 그의 생의 마감과 함께 최고의 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