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 수상자 -
프라이 오토(Frei Otto)
<사진출처 :
pritzkerprize.com>
1972년 뮌헨올림픽 Stadium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의 금년도 수상의 영예는 생태 건축가로 유명한 독일의 (고) 프라이
오토(Frei Otto)씨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프라이 오토 자신은 이 상에 대한 수상소식을 직접 듣지 못했다. 수상이 발표되기
하루전날 유고한 프라이 오토는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독일태생의 생태건축가로서, 한 독일건축사의 말을 빌리면 사실
건축디자이너이기 보다는 건축 엔지니어에 가까운 그가 프리츠커 상을 받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건축은 디자인과 기능이
분리되지 않고, 기능을 따라가는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인 뮌헨올림픽 스테이디움에는 필자도 개인적으로 두번 다녀왔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뮌헨을 방문했다면, BMW Belt와 더불어 꼭 한번 가봐야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Frei Otto의 대표작 Munchen Olympic
Stadium Photo © Christine
Kanstinger>
그의 나이 50에 설계한 이 건물은 당대에는 감히 꿈꿀수 없었던
최첨단 구조물로(당대 우리나라의 비슷한 연배의 건물들이 대부분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며, 1988 서울올림픽 경기장의 구조와 비교해 보면 많은
수준차이를 느낄수 있다-물론 서울올림픽경기장도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이게 과연 1970년대 건물일까 할 정도로 수십년을 앞선 건물이다. 철골에
대한 해석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철골에 의한 막구조라고 한다면, 당시에는 해석 불가능 할 정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만, 매우 정교한 부재들을
사용하여 훌륭한 미관을 완성하였고, 이에 따라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구조나 생태와 관련된 건축물들은 사실 그간 건축계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전통적인 건축디자인이라기 보다는 엔지니어에 의한 역할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요즘처럼
경제성과 특히 환경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의 세태에 따라, 또 지구온난화라든지, 실제적인 사람들의 Amenity를 고려할때, 막연하게 멋진
디자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기능적 needs를 충족하고나서 그와 개연되는 디자인의 조화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고)프라이 오토의 금번 프리츠커상 수상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또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생태건축가와 구조기술자들 또한 영예를 받은 것이다.
과거 프리츠커상 수상자들도 그의 수상을 축하하며, 그의 수상이
당연한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2004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자하디드(Jaha hadid)는 그와 절친한 친구라고 밝히며 그의 연구 및 인장
구조에 대한 탐사는 영감과 계몽을 통해 충분히 수상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으며 1989년도 수상자인 프랭크게리(Frank O Gehry)는 그는
우리에게 건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뀌게 했으며, 앞으로의 인구 고령화시대에 대한 획기적인 솔루션을 제공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프라이 오토는 1925년 5월 31일 독일 Siegmar 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자유에 대한 강의에 참석한 이후 그의 이름을 자유를 뜻하는 형용사 Frei로 지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일까. 그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많은 혁신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오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조각가 였고, 학창시절에는 stonemasonry의 도제로 일했다. 그는 글라이더 비행기 설계를 취미생활로 즐겼는데, 이 활동은 공기 역학 및
구조에 대한 이해, 가벼운 프레임과 막의 구조에 대한 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Roof
for the Multihalle (multi-purpose hall) in Mannheim, 1970–1975, Mannheim,
Germany Photo © Frei Otto>
1943년 9월 그는 조종사로 군복무하게 되었다. 1945년 4월
뉘른베르크 근처에서 연합군에 붙잡혀 전쟁포로가 되었다. 이후 그는 프랑스 샤르트르 근처에서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포로신분으로 2년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캠프건축가로 일했는데, 그때 적은 구조체로 많은 구조지지 방법을 터득하였다. 1948년 프라이 오토는 베를린 기술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기위해 돌아왔다.
1950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 대학에서 사회학 및 도시
개발을 공부했다. 1952년 그는 프리랜서 건축가로 베를린에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설립한다. 1954년 베를린 기술 대학에서 토목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5년도에 카셀에 연방정원 전시회에서 세개의 임시경량구조체를 첫 작품으로 내 놓았다.
프라이 오토는 많은 용도의 경량 텐트같은 구조체를 개척했다. 그는
경제적, 생태적 가치에 매료되었다. 그는 항상 양식의 최적의 형태를 결정하고 해당 동작을 테스트하기 위해 물리적 모델을 직접 만들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들은 프라이오토의 사업 구조분석을 위한 컴퓨터를 최대한 활용하였지만 계산의 기본 입력데이터 값은 반드시 물리적인 형태에서
찾았다.
경량구조에 대한 그의 염원은 1958년 그의 첫번째 새로운
연구소인 Zehlendorf 지구 연구소를 통해 가속화 되었다. 향후 5년동안 그는 미국의 예일, 버클리, 메사추세츠, 하버드 대학에서
정지적인 수업을 진행하였다.
1962년 그는 '네트와 세포막과 강선으로 구성된 건물의
설계'라는 책을 발표했고, 1964년 슈투트 가르트 대학에서 새로 설립된 경량 구조 연구소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1967년 국제 유니버셜
박람회 독일관의 계획의 의뢰를 독일정부로 부터 받게 되었고 이 계기로 그는 독일관의 성공적인 건축으로 국제적으로 독일의 기술력을 과시할수 있도록
하였다.
<The
1967 International and Universal Exposition or Expo 67, 1967, Montreal, Canada
Photo © Frei Otto>
이로 인해 1972년 귄터 베니쉬, 프라이 오토, 프리츠 레온
하르트에 의해 뮌헨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하게 되었다. 이 구조물은 관객들을 비와 태양으로 부터 보호할 수 있는 쌍곡선 막 캐노피 구조물로 올림픽
주 경기장, 수영장 건물의 패브릭 지붕구조체로 지금까지 훌륭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후 그의 많은 행적들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정도이고, 단
몇가지를 언급한다면 1980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Diplomatic club heart tent, 2000년 하노버 엑스포 일본관의 설계를 들
수 있겠다.
<Diplomatic Club Heart Tent, 1980, Riyadh, Saudi Arabia Photo © Frei Otto>
<Japan
Pavilion, Expo 2000, Hannover 2000, Hannover, Germany Photos by Hiroyuki
Hirai>
수 많은 찬사 가운데, 프라이 오토는 1974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토머스 제퍼슨 건축상과 메달을 수여받았다. 1982년도 독일 건축가 협회대상과 금메달, 2005년도 영국 왕립건축 연구소의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2015년 그의 생의 마감과 함께 최고의 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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